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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부터 무기력 탈출을 위해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책을 필사 중이다.
하루 30분. 타이머를 맞춰두고 책의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써가며 무기력이라는 나의 인생을 집어 삼킨 원흉?에 대해 더 진지하게 알아가는 중이다.
필사라기보다 깜지?의 느낌이 강한데.ㅎㅎ 무기력에 빠진 이들에게 참으로 추천하는 방법이다!!👍👍
아무 생각없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자연스럽게 집중도가 올라가고, 그냥 눈으로 읽었을 때는 책의 내용이 휘발되어 돌아서면 까먹는 매직이 펼쳐지지만 손으로 한 글자씩 쓰면서 머릿 속으로 느리게 곱씹게 되니 더 깊숙히 각인된다.
여튼 저자가 말하길,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는 정도에 따라 무기력한 시간이 비교적 짧으면 급성 무기력, 오랫동안 이어진다면 만성 무기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급성은 갑자기 발생한 만큼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하는데, '당연히 나는 그럼 만성 무기력이겠네.'라며 다음 글을 읽어나갔다.
만성 무기력에 대한 예시로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상 최악의 쓰나미를 이야기 하며, 이 참사로 아이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가 크다고 했다. 아이는 성인보다 환경 대응 능력이 더 약해 아이 입장에서는 난생처음 경험한 자연재해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천재지변으로 받아들인다고. 성인들도 물론 트라우마에 빠질 수도 있지만, 살아온 경험으로 이런 쓰나미가 흔히 일어나는 것이 아닌 데다 앞으로 이런 동일한 일을 겪을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이런 쓰나미가 드문 재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닥친 대응할 수 없는 그 엄청난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성인보다 훨씬 상처가 깊고 치유 기간도 길다고 한다. 이럴 경우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며 만성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배경에는 '내 힘으로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자각이 깔려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통제 불가능에 의해 발생한 무기력'이라고 정의한다. - p.43
그 뒤를 이어 마틴 셀리그만 교수(무기력 연구를 최초로 시작해 무기력 이론에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분)의 실험 및 연구 결과들을 예시로 들며 <학습된 무기력>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학습하고 나면 다른 사건에서도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심리적 부적응이 나타난다. 이들은 자기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기에 이후에 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로 이것을 통제 불가능, 비수반성 인지라고 하는데 이것이 학습된 무기력의 원인이다. - p.64
위 내용들을 필사하면서 점점 마음이 많이 아파왔다. 내가 무기력해진 이유를 점점 더 확실히 알아가게 되면서.. 어린시절, 더 어린시절, 더 더 어린시절을 거꾸로 되짚어 가보며..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그 느낌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던건가.
그리고는 내가 무심코 생각했던것보다도 훨씬 이 전부터 나의 이 무기력이 시작되었고, 꽤 오랫동안(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살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처음 시작은 나의 6살 무렵.
부모님 두 분이 오빠와 내 눈 앞에서 심하게 다투시곤 엄마는 그길로 휙- 골목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뒤로 한 번도 볼 수도 목소리 조차도 들을 수 없었던.. 하루 아침에 그 좋아하던 엄마를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혼자 남겨진 여자 아이.
결국 울음을 터뜨린 내게 울꺼면 너도 따라 나가버리라며 무섭게 다그치던 아빠.. 그래서 그 뒤론 울 수도 엄마라는 두 글자를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던 작디 작은 아이.
그 뒤로 아빠는 일 하신다며 멀리 타지 생활을 하셨고, 나를 미워하고 매일같이 세상 온갖 욕을 내게 퍼부었던 할머니와 오빠 이렇게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는 가끔 기분이 평온하실 때에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하셨다.
"그래도 00이 니가 착하긴 했어. 한 2-3일 엄마를 찾더니 그뒤로는 엄마 한 번을 안찾았다"며........
그 뒤로 줄줄줄.. 떠오르는 그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은 할머니가 연세가 드셔서 아빠가 모셔가신 후, 할머니가 나와 분리(?)가 되어 온전히 혼자가 되기 전까지 쭈욱 계속 되어왔던 것 같다.
학창 시절 내내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엄마 아빠랑 한 집에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산다는 창피함, 그리고 가난에 대한 수치심.
욕심은 많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크게 오르지는 않았던 성적, 그 시절은 성적순으로 학교가 배정되었던 때라, 중학교 때 어중간한 성적으로 제일 공부 잘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따라가지 못하고 늘 꼴찌에 머물며 자포자기 하듯 살아냈던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 뒤로 내가 원하는 전공, 대학을 꿈꾸며 나름 열심히 고3을 아둥바둥 보냈지만, 결국은 할머니랑 같이 지내면서 가까운 국립대에 여자가 취업 잘 된다는 식품 영양학과에 들어가라며.. 원치 않은 선택을 하게끔 했던 어른들.
철 없었던 그 때, 어쨌든 나를 길러 준 할머니께는 참 나쁜 생각이었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짐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왜 내 발목을 잡을까. 막말로 할머니는 아빠, 작은아빠, 고모들의 엄마지 내 엄마가 아닌데, 왜 내가 원하는 대학까지 포기하면서 할머니를 보살펴(?)야 하지? 나에게 한 번도 사랑을 준적도 없는 할머니를 나는 왜? 하는.. 뒤돌아보니 조금은 이기적이었던 생각..
그렇게 고3 말, 수능을 딱 100일 앞두고 어른들께 내 대학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그제서야 현실 파악을 하며, 그럴꺼면 더 이상 공부 안할꺼라며.. 울며 불며 모든걸 손에서 놓았던 것 같다. 엄마의 자리를 잃은 후 그 때의 상실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라는 짐 때문에 내 인생을 포기해야만 했던 기분.. 철없었던 고3에게 대학은 인생의 전부고, 모든 것이었을테니까..
그렇게 아무 힘 없는 6살 어린 여자아이에서부터 원치 않던, '어쩌지 못하는' 여러 상황 상황들을 겪어낸 세월이 장장 20년은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20년동안이나 학습되어 온 무기력이라니...
갑자기 그 6살의 아이가 너무나 불쌍하고, 그 지나온 세월들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난다.
독립 후 더 이상 나를 옭아매는 그 무엇이 없음에도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늘 조금 달리다 멈추고, 멈추고.. 그렇게 일어서서 달리지 못하는 나를 탓하고 채찍질하기를 무한 반복한 세월도 벌써 20년 가까이되어가는데,
그 가엾고 상처 많은 아이를 내가 왜 그렇게 외면하고 모질게만 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파왔다.
왜 남들처럼 달리지 못하냐고 윽박만 지르지 말고 더 감싸주고 손 잡아 일으켜줄껄.....
이제는 더 이상 '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6살 꼬마가 아니라고.. 다독여줄껄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다.
나는 살면서 가끔 '그런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난 참 잘 자랐고, 잘 살고 있어' 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아보니 아, 그게 아니었네. 내가 지금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지쳐있는데도 나는 내가 진짜 괜찮은 줄 알고, 남들 다 이정도는 우울하고 힘든 줄 알고 살아왔는데, 그건 내 큰 착각이었고, 결국은 이렇게 알아버리는 때가 왔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이제 그만 다그치고, 그만 윽박 질러야지.
괜찮다고, 당연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안아줘야주고, 이제 그만 일어나 천천히 같이 가자고 손 잡아줘야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도 말 해주어야지. 나의 6살 내면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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